2025년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을 마비시킨 대정전 사태는 유도 대기 진동과 송전망 불안정이 복합된 결과였습니다. 정전의 원인을 둘러싼 재생에너지 책임론, 그리고 이 사건이 한국 에너지 정책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합니다.
1. 5초 만의 붕괴, 스페인 포르투갈 정전 사태의 전개 과정
2025년 4월 28일 정오 12시 33분. 평범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일상이 단 5초 만에 정지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약 6천만 명이 정전에 휘말리며, 전례 없는 대혼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등 대도시 전역에서는 신호등이 꺼지고, 지하철과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항공편은 예비 전력에 의존한 채 운항을 지연했고, 통신망조차 불통 상태에 빠졌다.
전력망 관리자들은 사태가 순차적으로 번져갔다고 밝혔다. 스페인 남서부의 태양광 발전소들이 순식간에 전력망에서 이탈하며 첫 탈락이 발생했고, 이내 회복되는 듯하던 전력 흐름은 두 번째 이탈로 다시 흔들렸다. 이어지는 충격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초고압직류송전망(HVDC)을 마비시키며, 결국 대정전으로 폭발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5초 안에 벌어졌다는 점은 이번 사태의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를 보여준다.
포르투갈 전력망 운영사 REN은 이 정전이 스페인 내륙에서 발생한 극심한 온도 변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고압 전력선에서 ‘유도 대기 진동’이라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고, 이것이 송전망 전반에 신호 간섭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도 정전의 원인으로 “강력한 진동”을 언급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단정짓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추측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전 이후 몇 시간 만에 일부 지역은 복구되었지만, 전국적인 전력 복구에는 19시간이 걸렸다. 마드리드에서는 고속열차가 멈춰 시민들이 선로 위를 걸어 나왔고, 공항 운영과 ATM, 전자결제망까지 영향을 받으며 사실상 국가 기능 전반이 일시 정지됐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기후 변화, 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 복합적 위기였다는 점에서 유럽 전력사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2. 유도 대기 진동… 기후 변화가 불러온 정전의 새로운 변수
이번 스페인·포르투갈 정전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새로운 물리 현상이 전력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과 전력 당국이 지목한 원인 중 하나인 ‘유도 대기 진동’은 일반 대중에게 낯선 개념이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 변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
포르투갈 에너지 회사 REN은 “스페인 내륙에서 발생한 급격한 온도 변화가 초고압 전력선(400kV)에 이상 진동을 유도했다”고 밝혔다. 이 ‘유도 대기 진동’은 기후 변화로 인해 극심한 기온 차가 발생할 때 생기는 대기 중의 진동 현상으로, 고압 전선에 불안정한 흔들림을 유발한다. 그 결과, 전도체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전력망 내 통신 신호 간섭을 일으키고, 결국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 또한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강력한 진동”을 언급하며, 대기 현상이 정전 발생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다만 “정확한 원인을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국민들에게 성급한 해석이나 추측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상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이 비단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만 국한된 위험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미국 기상학자 댄 데포드윈은 “유도 대기 진동은 드물긴 하지만, 극단적인 기온 변화가 지속될 경우 세계 어느 지역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과 북미의 송전망은 서로 연결돼 있어 일종의 ‘도미노 효과’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도 대기 진동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기후 위기의 실질적인 전력 리스크로 부각되면서, 기후 변화가 에너지 시스템의 안전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3. 정전 복구는 빨랐지만, 스페인·포르투갈에 남은 불안감
이번 정전 사태는 그 규모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복구됐다. 발생 19시간 만에 대부분의 전력 공급이 회복됐고, 병원과 공항 등 주요 기반 시설은 예비 전력 시스템을 통해 필수 기능을 유지했다.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는 “복합 사이클과 수력 발전소가 재가동되어 공급량을 회복하고 있다”라고 밝혔고, 포르투갈 정부도 긴급회의를 소집하며 즉각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복구의 속도와는 별개로,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정전 당시 마드리드에서는 지하철이 멈추고, 일부 시민들이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으며, 고속열차가 갑자기 멈춰 승객들이 선로 위로 내려와야 했다. 리스본과 포르투갈 주요 도시에서는 ATM과 전자결제 시스템이 작동을 멈췄고, 일부 주유소는 영업을 중단했다.
또한 통신마저 일시적으로 두절되면서, 시민들은 가족과 연락이 끊기거나 긴급 상황에 대응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인터넷 활동 모니터링 사이트 넷블록스(NetBlocks)는 정전 직후 이베리아 반도 지역의 웹 연결이 평소의 17%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정확한 정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복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는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전은 사라졌지만, 에너지 체계에 대한 신뢰는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복구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지금부터 시작된 셈이다.
5. 재생에너지 때문 정전 원인 둘러싼 오해와 진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뒤흔든 이번 대정전 사태 이후, 일부 보수 언론은 재생에너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정전 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부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탈원전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예측까지, 재생에너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증폭시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단호하게 반박하고 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사태와 재생에너지는 무관하다”라고 명확히 밝히며, “이를 원전 부족과 연결 짓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무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재생에너지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한 언론은 거의 없다.
실제로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스페인 내륙에서 발생한 극심한 온도 변화와 이에 따른 유도 대기 진동, 그리고 송전망 혼선 등 복합적 요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는 일부 전력망 이탈을 겪긴 했지만, 사건의 핵심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대규모 정전은 재생에너지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2003년 이탈리아·스위스 정전으로 5천만 명이 피해를 입었고, 2006년에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정전으로 4천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 이들 사건은 주로 전력망 관리 실패나 기상 이변으로 인해 발생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스페인보다 훨씬 높은 국가들도 있다. 노르웨이는 90%, 브라질과 뉴질랜드는 80%를 넘기고, 독일은 60% 이상이 재생에너지로 공급된다. 이들 국가에서는 유사한 대정전이 보고된 바 없다.
이번 사태를 재생에너지의 한계로 몰아가는 시도는 과장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 문제는 재생에너지 그 자체가 아니라, 급변하는 기후와 복잡해지는 전력망 속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제도와 기술적 기반의 부재에 있다는 점이다.
6. 스페인 포르투갈 정전이 한국에 던지는 에너지 경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규모 정전 사태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사실 한국 전력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경고를 던지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확대,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대기 현상, 복잡해지는 송전망 구조 등은 모두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리스크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기반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약 1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반면 스페인은 2023년 기준 풍력·태양광·수력을 포함해 약 50%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일은 60%, 노르웨이는 90%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전과 시스템 붕괴는 재생에너지의 비중보다는 전력망 운영 능력과 제도적 유연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스페인의 경우, 유도 대기 진동이라는 기후 현상에 더해 송전망 투자 부족과 시스템 오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보다 더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 유럽은 국가 간 전력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전력이 부족할 경우 인접국에서 공급받을 수 있지만, 한국은 외부와 전력망이 단절된 ‘에너지 섬’이다. 이처럼 폐쇄적인 구조에서는 단 한 번의 시스템 오류가 전국적 대정전으로 번질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시간대별·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사실상 없고, 전기 판매시장도 독점 체제에 머물러 있어, 수요조절이나 수급 안정화를 위한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 이런 구조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태는 단순한 외신 뉴스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묻는 현실적 경고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설비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함께 구축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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